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쯩 자매 (문단 편집) === 비운의 결말 === [[베트남]]의 자유와 독립은 오래가지 못했다. 쯩짝이 왕위에 오른 지 3년 뒤인 서기 42년 ~ 43년, 후한의 세조 [[광무제]] 유수는 복파장군 [[마원(후한)|마원]]을 대규모 토벌군의 군사령관으로 임명하고 베트남으로의 침공을 개시했다. 30,000명의 토벌군을 상대로 베트남군은 여장군 '레쩐'(Lê Chân, 黎眞)의 반격 등 영웅적인 항전을 벌였지만 베트남이 상대하기에 후한은 너무나도 턱없이 강력한 제국이었다. 게다가 보급품도 부족하고 훈련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베트남 군인들을 데리고 [[난세]]를 통해 전투력이 강화된 후한의 정예 군대를 이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. 오늘날의 베트남 하노이 근처에서 벌어진 최후의 전투에서 쯩 자매는 필사적으로 항전했지만 한군의 전쟁 포로가 된 수천 명의 베트남 군인들은 참수당하고 말았다. 쯩 자매는 서둘러 도망쳤지만 추격해 온 마원의 한군에게 잡혀 결국 처형당하고 잘린 목은 소금이 절여져 후한의 수도 [[낙양]]으로 보내지면서 [[한나라]]의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일어난 베트남의 반란은 끝내 실패하게 되었고 베트남의 독립도 먼 훗날 [[응오 왕조]]가 개창될 때까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. 베트남인들의 전설에 의하면 한나라군이 알몸 작전으로 나선 일로 베트남 여전사들이 모두 달아나고 남자들은 포로로 잡혀 처형되는데 쯩 자매는 추격병에게 잡혀 죽은 것이 아니라 서로 껴안은 채 송코이강이 흐르는 절벽으로 몸을 던져 자결했다고 하며 시체를 영영 찾지 못했다고 전해진다.[* 삼국지나 베트남 역사에 대해 아는 이라면 느끼겠지만 삼국시대에 오의 육윤이 조씨정을 제압할 때랑 거의 동일한 내용이다. 여성 장군과 군인들을 남성 병사의 알몸으로 흔들고 진압했다는 것인데 조씨정의 경우도 그 일화가 민간 전승이라 전해지는 것을 보면 쯩 자매에서부터 전해진 전승이었거나 베트남 특유의 전승으로 보인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